이승만 정부 시절 환율수준과 원조 규모에 대한 한미 갈등
(50년대 한미 경제관계사의 핵심 내용 분석)


1. 들어가는 글

사실 우리나라의 예전 모습을 둘러 보는 작업은 신선한 시각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이승만 정부의 경제 정책들, 특히나 수출 정책이나 환율 정책을 포함한 경제 부흥 정책들을 보며, 독재와 무능, 부패로 버무려져 있었던 이승만 정부에 대한 이미지가 “아~~ 나름대로 애를 쓰고 있기는 했구나!”라고 생각이 바뀌었으니까요.

사실 이승만 정부에 대한 자료를 찾기 시작한 건, 저장된 문서들의 파일 기록을 보니 대충 2006년 11월경이더군요. 한창 50년대 북한 관련 글을 쓰고 있던 때였죠. 당시 가장 인상 깊었던 글이 바로 지난 번 글에서 자료의 대부분을 빌려 온, 부산대 차철욱 교수님께서 “지역과 역사” 제 11호에 투고하신“ 1950년대 미국의 대한 원조정책 변화와 이승만 정권의 수출정책 ”라는 글이었습니다.

각설하고, 서프에 글을 쓰기 시작한지가 햇수로 6년째에 써 올린 글도 대략 100개에 육박하는 것 같습니다. 이중 상당부분이 소위 대문글로 올라가 많은 분들의 관심을 받기도 했죠. 그런데 이제와 드리는 고백이지만, 글을 쓰고 독자들의 댓글을 받는 과정은 상당한 즐거움과 고통이 동반 된답니다. 왜냐하면 George Lakoff의 “Don’t think of an elephant!”라는 책에 나오는 대로 소위 ‘진영’과 상관없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frame’이란 장치를 두고 자신이 기존에 갖고 있는 ‘생각 틀’을 통해 새로운 사실이나 논리를 ‘변형’해서 자신의 방식으로 받아 들이니까요. 소통이 어긋나는 경험을 할 때가 많다는 뜻입니다.

지난 번 글도 그렇고 이번 글도 마찬가지일 테지만, 제가 독자들에게 전달하기를 희망하는 내용은, 이 정도 노력했으니 이승만 정부도 좋은 정부 아니냐? 라는 이승만 옹호의 내용이 아니고, 해방과 한국전 그리고 전쟁의 참화를 복구하는 복구기에 이승만 정부가 행한 각종 정책과 그 결과물들이 박정희 정부와 그 이후의 경제 발전에 미친 공과를 살펴보자는 것이죠. 더불어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봄으로써, 미국 쪽 자료에 치우친 선입관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해 보자는 뜻도 있고요.

하지만 토론이 오가는 과정에서 올라오는 댓글들은 대부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승만 정부에 대한 기존의 자신의 관점들에 변함이 없다는 고백이나 아니면 미국 쪽 시각에 편향된 채 이승만 전 대통령을 미국 쪽 시각에 기대어 희화화하는 모습들이 대부분이죠. 사실 그런 댓글들을 보면,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하고 자괴감이 들기 십상입니다. 그나마 박통의 경우 아직도(-.-;) 그의 발자취를 신격화하고 있는 무리들이 꽤(?) 많은 반면 이승만 전 대통령의 경우 그의 공과를 살펴 보는 노력조차 의미가 없어 보일 만큼 사람들의 안중에서 잊혀진 지도자의 모습이니까요. 거기다 대고 혹여 이승만 전 대통령에게 유리해 보일 일체의 노력 자체가 조소거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더구나 토론의 상대방은 지속적으로 토론의 논점을 회피하며, 심지어 자신의 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발제글에 대한 반박글을 올릴 때, 발제글 내용보다는 그 발제글에 달리 댓글을 문제 삼아 반박글을 올리는 것을 보며, 좌절감 비슷한 걸 느끼기도 했습니다. 하긴 말이 좋아 토론이지 정식으로 서로 토론의 장을 정해 놓고 일대일로 항목을 따져가며 벌이는 토론도 아니니, 까다롭게 그런 논점 이탈 행위를 뭐라고 할 수만도 없는 노릇입니다. 이런 우울한 토론(?)을 나름대로 정리하는 기분으로 건설적인 마무리를 해 볼까 합니다.

2. 본론

이승만 정부 시기의 한국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 요소들로는 (1) 한국 정부의 경제 정책 (2) 원조 (3) 미국 정부의 정책 개입 등을 들 수 있다. 이중에서 원조는 전후 한국이 직면해 있던 경제적 불균형 요소를 거의 절대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 가용자원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이 원조를 둘러 싼 한미간의 갈등은 원조물의 구성 (자본재와 소비재의 비율 논쟁)과 규모 (원조액의 증감과 환율 논쟁)가 핵심이었던 바, 이를 중심으로 한미간의 재건 정책 방향과 그 효율성에 대한 평가를 정리해 보기로 한다.

(1) 이승만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한 기존 연구

우선 현재까지의 이승만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한 연구자들의 연구 성과는 크게 3부류로 분류할 수 있다.

ㄱ) 가격 시장을 왜곡하여 경제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이론
이 부류의 학자들은 이승만 정부의 저환율정책이 비효율적 자원분배와 저성장을 유발했다는 입장이다. 특히나 박정희 정부 시절 수출이 국가 경제 성장률에 크게 기여한 바와 대비시켜 이승만 정부 시절 폭넓게 발견되는 수입대체활동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이 부류의 학자들로는 5공 시절 청와대 경제수석과 재무부 장관을 역임하고 현재 이명박 정부에서 ‘국가경쟁력 강화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사공일(1981, 경제개발과 정부 및 기업가의 역할, 한국개발연구원)박사를 들 수 있다. sonnet님의 현재 입장도 환률 문제를 포함해서 이 부류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견해는 이승만 정부 시절의 배경, 즉 경제정책 입안의 주변 상황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고, 1950년대의 경제 상황에 원조와 미국의 개입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간과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ㄴ) 경제안정론
이승만 정부의 정책기조를 경제안정론으로 파악하는 입장이다. 당시 크게 대두된 인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하고 또한 원조 공여자인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 수 밖에 없던 상황에서 이승만 정부는 경제안정을 중심 정책으로 삼았다고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이 견해 역시 이승만 정부가 내건 정책기조인 ‘안정’과 ‘부흥’중에서 ‘부흥’ 측면을 간과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ㄷ) 미국의 동북아 정책의 하부구조에 종속된 형태로 이해
최근 비밀 해제된 미국 공문서를 활용하여 미국의 영향력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미국의 한일경제통합전략의 일환으로 이승만 정부의 경제정책을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이 견해 역시 이승만 정부 당시 경제정책의 주체성과 일관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런 학술적 접근법과는 별도로 sonnet님께서 두 차례에 걸쳐 미국의 각종 자료를 근거로 제시하신 이승만에 대한 미국의 이미지, 즉


 영향력과 판돈 모두를 싹쓸이하려는 강인한 포커꾼으로서의 타고난 기술을 이용하여 “전세계의 패자로부터 최대의 ‘자릿세’”를 뽑아냈다.

이승만 스타일 - “일본이 가진 모든 것을 우리에게 달라, 그것도 내일 당장 달라”

이는 미국정부 측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무역,국제수지정책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이 점은 한미 간의 으뜸가는 쟁점 사안이 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 측 시각으로 보자면 빈대치는 한국 측이 환율을 갖고 장난을 쳐 가며 원조를 주는 미국을 벗겨먹으려고 드는 셈이었기 때문입니다.

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한번 해명해 보도록 하겠다.)


(2) 이승만 정부의 정책 목표와 수단

당시 한국 경제에 원조가 차지하는 독보적인 비중은, 전체 외환수입액의 72%를 점하고 있다는 사실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즉 7%의 수출과 21%의 무역외 수입의 몇 배가 넘는 규모였다. 이 막대한 원조자금이 한국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경로는 크게 2가지 방법이 있었다. 한미 양국은 이 경로를 중심으로 각자의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치열한 갈등 과정을 겪게 된다.

ㄱ) 원조 자금의 용처

원조 자금의 용처, 즉 자본재와 소비재를 각각 얼마씩 도입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당시 한국 경제의 재건방향과 범위에 핵심적인 요소였다. 우선 한국 쪽 입장을 알아보자.

1953년 8월 26일과 27일 양일에 걸쳐 조선일보의 기사를 보면, 당시 한국 정부의 입장은,

 “ 일시적인 통화안정과 민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소비재를 다량 도입하는 것보다 당면한 고난을 참더라도 국가 백년대계를 세우기 위해서, 생산재를 다량 도입하여 한국경제를 재건시켜야 한다는 입장에서 원조물자는 ‘시설재’ 중심으로 도입되어야 한다”

로 정리가 될 수 있다. 실제로 1954년의 부흥계획안의 원조물자 도입비율을 살펴보면 생산재가 60%, 소비재가 40%를 차지하고 있다. 1956년 부흥계획안에서도 마찬가지로 생산재 52%, 소비재 43%, 구호 및 기술원조가 5%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한국정부의 입장은 구체적으로 다음 부분의 사업에 보다 많은 원조를 집중하고자 하는 노력이 경주되었다.

i) 대규모 투자가 요구되고 자본회전율도 낮은 사업
하지만 공업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사회자본
전력개발, 철도, 항만, 도로 같은 교통시설과 통신시설 복구 및 확충 등

ii) 전후 재건에 따른 수요 증대가 예상되는 기간산업 공장
하지만 대규모 투자와 장기계획이 예상되고 민간의 자본축적이 미비해서 민간기업이 감당할 수 없는 사업
제철, 시멘트, 판유리, 비료 공장 등

iii) 소비재산업을 중심으로 국내 생산을 확대하여 시급한 물자 부족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
면방직 공업, 소모방공업 등


한마디로 한국 정부의 당시 경제 계획을 정리하면 다음으로 정리가 될 것이다.

국내소비를 기본적으로 국내생산으로 충족
아직 부족한 초과수요는 물자의 해외 수입으로 해결
수입 대금은 수출의 확대를 통해 자력 조달

이는 당시 제3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추구한 ‘자립경제’의 건설을 추구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남미 쪽의 인기 영합 정책과 비교해 볼 때, 어려운 시기를 담당한 정부로서 건강한 입장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반면에 미국정부의 입장은 재정안정과 민생문제의 해결을 가장 중요한 당면과제로 삼았고 따라서 원조물자의 주된 구성을 ‘소비재’로 정했다. 미국정부가 제시한 원조물자 도입비율은 1954년 생산재 33%, 소비재 67% 그리고 1956년의 경우 생산재 35%, 소비재 65%였다.

그리고 막대한 원조자금이 소요되는 장기투자사업보다는 소비재산업을 중심으로 제안된 재건을 목표로 삼았다.


ㄴ) 원조의 규모를 결정하는 정책 수단 (환율과 원조 규모)

당시 한국 정부가 추구한 저환율 정책이 한국 입장에서 왜 경제부흥에 유리하게 작용했는지를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자.

대충자금환율은 원조물자를 판매할 때 적용되는 최소환율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환율이 낮다는 의미는 원조물자 판매가격이 그 만큼 낮아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구체적으로 다음의 두 가지 이점을 제공한다.

1) 고환율인 경우와 비교하여 민간부분과 정부부분의 투자자금 경쟁 감소 --> 구축효과 감소
2) 민간 기업의 생산비 절감 --> 자본 축적 유리

당시 미국 정부의 환율 인상 압력과 이에 대항하는 이승만 정부의 노력은 대단한 것이어서, 이승만 정부 5번의 공식적인 대충자금환율 인상은 모두 원조와 유엔군 대여금 상환을 중지해 버리겠다는 미국의 협박 수준의 압력이 가해지기까지는 끝까지 버티는 이승만 정부의 배째기 전략에 따라 겨우 이루어진 결과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이승만 정부의 배째기 전략 때문에 sonnet님 글에 나오는 미국 쪽의 지독히 혐오스러운 이승만 논평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당시 우리 정부가 가지고 있는 사고 방식의 일부를 독자들에게 제시함으로써 한국 쪽 입장과 미국 쪽 입장을 균형 잡힌 시선으로 바라 볼 수 있는 기회를 드리고자 한다.

1952년도 국회 본회의 속기록 일부
 “ 우리나라가 세계의 모든 자유국가를 방어하는 방파제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방파제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막대한 손실을 입고 있고 또 그러한 파괴상태에 있는 만큼 자유국가들에 대해서 우리나라의 경제를 재건하도록 회복할 수 있도록 이것을 어디까지나 요구를 하며 우리의 권리를 권리답게 행사하는 그러한 입장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여기에 명백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현재의 이 기진맥진한 이 경제 상태를 회복할 길은 우직 유엔 각국에 대하여 우리의 부흥을 위하여 좀 더 속히 이것(원조)을 해달라는 권리를 행사할 수 밖에 없다.”

사실 이런 발언을 보며, 거의 같은 시기 북한이 동구권 사회에 취하고 있던 입장과 거의 같다는 점이 무척 인상 깊었다. 결국 당시 우리 정부는 이 시기의 재정적자와 인플레이션이 막대한 국방비 지출에 따른 것이라는 입장이었고, 이런 국방비 지출의 원인이 자유진영의 최전방 국가라는 지정학적 위치이기 때문에 미국을 포함한 자유진영이 지원을 해 주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따라서 미국 쪽에서는 “현재 한국은 유용하게 흡수할 수 있는 최대한의 원조액을 받고 있으나 원조계획을 충분히 효과적으로 운영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 원인은 한국정부의 ‘비현실적인 환율정책’으로 돌리고 있지만,

한국 정부는 한국정부대로 국방예산이 경제부흥 자금을 억압하는 상황에서 “표면상의 경제원조가 실질적으로는 군사원조에 불과하다”는 입장이었다. 이를 뒷받침하는 당시 한국 정부의 군사비 지출과 정부 세출의 비율을 살펴보자.

1953년 62%를 정점으로 1957년 53% 그리고 1960년 42%로 감소하고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경찰 예산과 군경원호사업비를 망라한 광의의 군사비는 1950년대 전반에 걸쳐 평균 58%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나마 한가지 주의할 사항은 평균 58%의 군사비 비율도 우리 국군이 소비하는 무기와 탄약, 그리고 피복비와 부식비 같은 경상비를 제외하고 나온 수치이다. 왜냐하면 이들 대부분은 미국 정부가 제공한 군사원조로 때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쯤 해서 미국 쪽의 시선을 소개해 주신 sonnet님의 표현처럼, 이승만을 ‘포커꾼’으로 그리고 우리 정부의 자유진영 최전방 국가 이론을 ‘자릿세’로 보는 시각에 대해 독자 분들께서 스스로 합리적인 균형감을 이미 잡으셨으리라 기대해 본다. 미국의 입장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우리 쪽 역시 나름대로의 사정과 논리는 있었다.


(3) 한국 정부의 재건 방향

당시 우리나라의 일인당 국민소득은 엄청나게 낮은 상태였다. 1952년 64달러, 1953년 78달러였다. 이렇게 낮은 국민소득을 기대하고 재건에 필요한 자금을 국내저축으로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따라서 재건계획에 필요한 자금을 원조자금에서 끌어다 쓰겠다는 생각은 오히려 자연스럽고 또한 바람직한 결정이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1955년 5월 4일자 담화문을 인용해 본다.

 “ 외국 원조금으로 (재정)적자를 메울 생각은 말 것이라고 한 것은 경제원조금은 미국이 한국의 경제를 부흥시키기 위한 것이지 군비에 쓰자는 것이 아니므로 대충자금은 순전히 경제부흥에만 써야 하고 정부비용이나 군비로 쓰지는 말도록 한 것인데..”

당시 한국정부가 취한 정책방향, 즉 공업화의 기초를 닦고 생산능력을 확충하고자 한 노력은 올바른 방향이었다.


3. 결론

이승만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한 기존 학계의 다양한 입장도 소개해 드렸고, 당시 한국 쪽 입장도 정부 부처나 이승만 전 대통령의 목소리를 직접 인용해서 소개해 드렸다. sonnet님께서 소개해 주신 솔직하고 생생한(?) 미국 쪽 시각과 함께 들으시면, 1950년대의 우리 상황에 균형감을 가져 볼 좋은 자료였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50년대의 한국 경제를 평가하고자 한다.

당시 원조는 거의 절대적으로 한국 경제를 좌우하는 큰 요소였다. 물론 전쟁으로 폐허가 된 우리 경제 재건에 결정적으로 유용한 자원이었다. 하지만 이승만 정부의 경제정책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원조라는 자원은 미국 정부의 정책개입이란 또 다른 요소에 의해 그 효과가 제한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 역시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50년대 전체에 걸쳐 이승만 정부의 경제정책은 상당한 일관성을 갖고 있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즉 경제부흥이라는 정책 목표를 단 한번도 놓친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대에 민주주의의 파괴자라는 정치적인 오명에 더해 경제적 성과에 있어서 박정희 정부와 비교되는 낮은 평가를 받는 점에 대해서는 독자 분들께서 이해하여 주셔야 하는 점들이 있다. 당시에는 이승만 정부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영역들, 즉 원조물자 구성, 원조액 증감, 원조의 계획성, 정책목표와 수단에 대한 미국의 압력 등의 요소들이 자주적이고 체계적이며 일관적인 우리 정부의 노력들을 제한했다는 사실이다. 즉 이들 요소들은 50년대에 이승만 정부의 경제 정책을 이해할 때 결코 빠뜨려서는 안 되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4. 후기

사실 sonnet님의 글 중에서
단순논리의 약점 ☜ 이란 글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이승만 정부의 경제 정책 글을 쓰게 될 줄은 꿈에도 꾸지 못했습니다. sonnet님의 그 글은 한 네티즌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제 성장에 절대적인 기여를 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서 ‘민중주의적 해석’과 ‘단순논리의 약점’을 지적하신 글이었죠. 그런데 sonnet님께서 그 네티즌의 글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개작한 부분을 명시해 놓으시고도 오히려 본인의 글 말미에

“또한 큰 권력을 갖고서도 어리석게 굴면 경제정책에 실패할 수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김일성이나 김정일은 이 좋은 예가 아닐 수 없다.”

라는 자신이 공격한 한 네티즌의 논리와 거의 동일한 논리로 끝맺음을 하신 것이 무척이나 인상 깊었습니다.

그런데 sonnet님께서 본인이 지적한 내용과 동일한 오류를 지적한 글이 foog님에 의해 올라오고, 얼마 후 sonnet님께서 foog님의 지적에 대한 반론글(
미국의 대한원조와 경제성장의 시☜)을 쓰셨죠. 실망스럽게도 논점을 이탈한 전형적인 물타기 글이었습니다. 세상에 인터넷에서 논객들 사이의 논쟁에 본글 내용이 아닌 댓글을 붙잡고 논쟁을 하는 경우는 처음 봤으니까요.

그리고
일본이 가진 모든 것을 우리에게 달라, 그것도 내일 당장 달라 ☜ 글에서 제 글에 실리 도표 (1958~1970년까지의 수출 증가율) 를 수출액을 표시한 도표로 반박하신 부분을 보고 작년에 참여정부에서 출간한 자료집 생각이 나서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당시 조중동의 경제성장률 타령(70, 80년대에 비해 경제 성장률이 지속적으로 낮아진다는 지적)에 대한 반박 자료로 참여정부에서 자료집을 만들었는데, 거기에 있는 도표가 생각이 났습니다. 한번 가져와 보도록 하겠습니다.

 Export1.JPG

이 도표에는 1958년 이후 2006년까지의 수출 증가율과 수출액 자료가 모두 담겨 있습니다. 수출 증가율은 수치로 그리고 수출액은 막대 그래프로 표시되어 있죠. 보시면 아시겠지만, 박정희 정부가 수출로 한창 잘 나갈 때, 즉 6, 70년대 중반의 어마어마한 수출 증가율 정보가 담겨 있죠. 그런데 막상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낮은 수출 증가율을 보이는 최근 10년 간의 수출 실적을 막대 그래프로 그리면 위와 같은 민망한 모습이 되어 버립니다. 제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따로 첨언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미국 쪽의 시각에 기대어 이승만 정부를 희화화하는 sonnet님의 입장에 대해서는, 그냥… 미국 쪽의 시각을 흥미롭게 소개해 주신 걸로 이해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sonnet님의 다음 표현에 대한 견해를 표명하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원조와 수출이라는 목표가 충돌할 때 이승만 정부는 언제나 원조를 선택했다. 이 점을 부인할 수 있는가?

이런 견해가 나오는 것은 앞서 제시한 50년대의 상황들과 또한 당시 정부가 추진했던 ‘자립경제’ 원칙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나오는 표현입니다. 당시 우리 정부의 입장은

국내소비를 기본적으로 국내생산으로 충족
아직 부족한 초과수요는 물자의 해외 수입으로 해결
수입 대금은 수출의 확대를 통해 자력 조달

으로 대표되는 ‘자립경제’ 건설이 목표였는데, 이 당시는 전쟁으로 국내 산업 시설 대부분이 파괴되는 절대 생산 부족의 상황이었죠. 따라서 뭔가를 생산해서 수출하는 것이 우선이기 보다는 국내 소비를 충족시킬 국내 생산 시설 확충이 급선무이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수출의 필요성은 국내 부족 물자의 수입 대금 마련 창구라는 인식이 팽배하던 시절이었죠.

모든 물자가 부족하던 시절, 하루라도 빨리 부족 물자의 국내 생산을 가능케 하는 수입대체 산업의 부흥이 최대의 정책 목표가 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죠. 미국에 기대어 원조 자금을 하루하루 까먹는 형태가 아니라 지금 당장은 좀 먹고 입고 살기 힘들더라도 장기적으로 우리 손으로 생산해서 국내 수요를 채우는 ‘자본재’ 도입에 정부가 열을 올리는 것이 합리적인 시절이었습니다.

따라서 54년부터 58년까지의 수출이 박스권 형태를 보인 것은 이승만 정부가 원조를 선택해서라고 해석하는 것은 당시 상황을 종합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편협한 시각이죠. 그 시기는 기본적인 국내 소비를 충족시킬 소비재 생산을 위한 생산 시설 확충 시기였으니까요.

그리고 1958년과 그 이전의 수출액을 비교하실 때는 주의를 하셔야 합니다. 1958년 3월까지는 실제 거래가격을 기록했지만, 그 이후에는 수출은 FOB를 수입은 CIF 가격으로 평가해서 기록했으니까요. 그 이전과 이후를 평면 비교하는 것은 그렇게 정확한 비교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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